영국의 연금 자동등록 성과와 행동경제학

연금시장 2018. 2. 18. 12:51

현재 우리나라는 퇴직연금제도가 선택제도여서 의무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국민연금같은 공적연금은 당연히 의무화되어 있지만, 퇴직연금과 같은 "사적연금"의 경우 나라마다 사정이 다릅니다.

1990년대 이후 대다수 선진국들은 공적연금의 재정문제 때문에 연금개혁에 착수하였고 사적연금을 확대하고자 노력했지만 모두가 스위스처럼 의무화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면 퇴직연금을 의무화하면 기업이나 근로자들이 퇴직연금 부담금을 세금으로 인식하여 저항이 크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퇴직연금에 가입하도록 유인(incentive)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거죠. 퇴직연금 가입기업에게 세금감면해주고 근로자가 추가로 부담금 내면 거기에도 세제혜택주고...

...

그러다가 새로이 등장한 대안이 자동등록(#AutomaticEnrolment)입니다.

이걸 #디폴트옵션 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많은데, 일정요건을 갖춘 근로자를 무조건 퇴직연금에 가입시키고 일정기간 내에 본인이 원하면 탈퇴(opt-out)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퇴직연금에 가입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니깐 이렇게 하는 거고, 전형적인 #행동경제학적 인 접근인 거죠.

영국에서 자동등록의 수익률이 어떨지에 1980년 2000년에 태어난 친구들을 대상으로 연구해봤는데 2017년 연봉 2천8백만원(1만9천파운드)의 저소득 27세 근로자가 부담금을 8% 납입할 경우 68세에 1억3천만원(8만7천 파운드)를 받고, 연봉이 7천3백만원(4만9천파운드)인 고소득자의 경우 3억2천만원(21만3천파운드)를 받는다는 등의 연구결과가 나왔어요. (기사 제목은 16%로 뽑았는데, 우리나라랑 쫌 먼 얘기죠 ㅎㅎ)

자질구레한 가정이야 어땟든간에 자동등록시키면 68세에 몫돈이 생기는 거고, 이런 위대한 #넛지 는 정말 필요하다는게 결론!

 

 

 

https://www.professionalpensions.com/professional-pensions/news/3026379/millennials-could-get-gbp274-108-pension-with-16-contribu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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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말 우리나라는 세계 8위 규모의 연금자산 보유

연금시장 2018. 2. 18. 12:39

2017년말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22개 국가의 연금자산의 규모는 4만5천조원($41,355bn)으로 전체 GDP의 67% 수준입니다.

우리나라는 규모면에서 미, 영, 일, 호주, 캐나다, 네델란드, 스위스 다음이어서 세계8위!

...

주요 7대 연금 강대국(P7)을 기준으로 연금자산의 46%가 주식에, 27%가 채권에 투자되고 있으며 대체자산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랍니다.

DB형보다는 DC형이 당연히 높아서 48.6%를 점유하고 있고 해마다 비중이 증가하고 있습니다.(우리나라는 DC와 기업형 IRP를 합쳐서 24.3%%입니다)

참, 윌리스 타워와슨에서 인용했어요

GPAS-2018.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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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국립헌법센터(National Constitution Center)

Lovely Philly 2014. 9. 18. 03:32

미국은 약 230년 전인 1787년 헌법(Constitution of the United States)을 제정하였고 이 헌법이 제정된 917일을 제헌절(Constitution Day)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또한 헌법 제정이 발표되었던 필라델피아 Old City에 국립헌법센터를 세워서 그 역사와 의미를 일반인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국립헌법센터는 제헌절에는 인당 15달러의 입장료 없이도 무료로 센터내의 다양한 시설을 둘러볼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국립헌법센터 2층의 헌법역사전시관(The Story of We the People)에서는 미국의 독립 이후 헌법의 제정과정과 각종 수정안들의 배경을 미국의 다사다난했던 역사와 함께 차분히 전시하고 있다.

미국은 1776년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하였음에도 독립된 국가의 독자적인 헌법을 갖고 이를 적용한 것은 11년이 지난 1787년이었으니, 헌법의 탄생과 적용은 순탄하지는 않았던 셈이다. 독립이후 주정부의 독립을 중시하는 세력과 연방의 가치를 중시했던 세력간의 끊임없는 쟁투가 고스란히 제정헌법에 담겼고, 이후 수차례의 수정을 통해 현재 미국 모든 주의 정치적 규범으로 자리를 잡게되었다.

 

미국 제정헌법의 주요 역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출처 : 위키백과)

1776.7.4. 독립선언, 13개주로 구성된 연방탄생

1781 각 주의 대표로 구성되는 연방의회(Confederation Congress)를 설치하는 등 주 상호간의 정치적 유대관계를 강화하기 위하여 연방규약(Articles of Confederation, 1781~1788)을 제정

1785 9 5개 주에서 온 위원들은 애너폴리스 헌법회의에서 만나 상업을 증진시킬 연방조항의 조정에 대해 토론했다. 그들은 각 주 대표의 소집해 필라델피아로 연방정부의 역할 증진을 토의했다. 이 논의 뒤에 1786 2월 21 연방 회의(Congress of the Confederation)는 연방조항을 개정하는 계획에 서명

1787.9.17. 필라델피아 연방회의에서 미국 헌법(Constitution of the United States) 제정

1788.6.21. 연합회의는 뉴햄프셔 주가 9번째로 연방의 비준을 완료하여 새 헌법 발효(헌법이 발효되기 위해서는 최소 9개의 연방이 비준을 받아야 유효)

1789.3.4. 새 정부에 적용

1789년 제1회 연방 의회는 미국 헌법권리 장전(Bill of Rights)이라고 불리는 제1수정 조항으로 제10개정을 덧붙여 안건을 심의 가결되었고 수정안은 1791 수정에 필요한 의회의 비준을 거쳐 발효

 

 

아무튼 국립헌법센터 2층 전시관에는 독립당시 주정부와 연방정부 사이에 헌법조항을 둘러싼 팽팽한 대결, 남북전쟁 시절의 링컨 대통령의 10문장으로 이루어진 게티스버그 연설, 흑인과 여성의 투표권이 확보되는 과정,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는 헌법조항의 영향, 워터게이트 사건 등이 오디오 비디오 자료와 함께 각종 수정 헌법조항과 연계되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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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벚꽃길 Kelly Drive

Lovely Philly 2014. 4. 22. 04:44

Kelly Drive

필라델피아의 스쿨킬 강변을 따라 벚꽃이 활짝 피었다. 서울 윤중로보다 2주 정도 늦게 피었지만 그 아름다움이 결코 윤중로에 뒤지지는 않는 것같다. 그리고 이 강변길의 이름이 Kelly Drive라는 사실을 알게 되니, 2달러 지폐를 행운의 화폐로 만들어 버린 아름다운 여배우 Grace Kelly가 떠올라서 더 매혹적으로 보인다.

필라델피아 출신의 이 여배우는 아카데미 영화상을 받은 미국영화의 전설적인 50명의 배우중 한사람(1996.6월 미국 영화연구소 선정)으로 모나코 Prince Rainie 3세의 아내이다.

그녀는 “High Society라는 영화에 같이 출연했던 Frank Sinatra로 부터 행운의 2달러를 받은 후 왕비가 되었고, 비운의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그녀의 일생을 소재로 한 니콜키드만 주연의 “Grace of Monaco”가 올해 칸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되었다)그녀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이런 영화같은 삶 때문에 필라델피아 사람들은 무척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이 길의 이름은 Grace Kelly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고, 그녀의 아버지인 John B. Kelly의 이름을 기념하여 지어졌고, 그래서 정식 명칭은 John B. Kelly Driv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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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미국식당에서 얼마를 팁(Tip)으로 줘야 하나?

보험계리 2014. 3. 25. 23:19

Tip : To Insure Promptness

17세기 런던 로이즈 커피하우스(Lloyd's coffee house)에서 선박보험 등을 취급하던 기업가와 상인들, 선원들이 몰려들면서 대기시간이 길어지자 웨이터에게 주문한 커피가 빨리나오도록 몇 푼씩 주었던 동전으로, 신속함을 담보하는 보험료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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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밥을 사먹을 마다 팁을 내야 하는데 얼마를 내야 하느냐가 약간 고민거리다. 물론 10~20% 내는 것이 기본이라고 하지만, 어떤 식당은 그냥 내가 가져가서 먹는데도 팁을 적어 넣게 되어 있어서, 카드로 선결제할 얼마를 적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아예 어떤 식당은 영수증 아래에 음식값의 20% 해당하는 금액을 예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식당이 내라는 대로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런데 오늘 출근길에 무가지 신문(Philly Metro 8p, March 25, 2014)에서 Lizzie Poster라는 친구(에티켓 전문가라는 Emily Post 몇대 증손녀란다) 팁을 얼마 줘야 미국 에티켓에 맞는지 설명하고 있는 것이 있어서 인용해 본다. 일단 친구는 팁이란 것을 누군가가 먼저 내게 좋은 서비스를 주면, 서비스를 받고 후에 거기에 대해서 고맙다고 사례하는 으로 정의하고 있는 , 이런 접근방식이 맘에 든다.

 

 

 

1.      음식이 식탁으로 서빙되서 때는 무조건 10~15% 서빙해주는 사람에 줘라

2.      웨이터 앞 카운터에 앉아서 식사할 때는 웨이터가 음식을 내자리에 놔주어도 팁을 필요없다

3.      좌석에 안내 받아 밥을 먹는 식당이라면 15~20% 팁을 줘라. 서비스가 형편이 없더라도 최소한 15% 주고 나서, 매니저를 불러서 정말 형편없는 서비스(it was really atrocious service!)라고 한마디 해라

4.      술집에서 잔술 먹을때는 한잔당 1~2달러를 팁으로 줘라

5.      택시를 , 택시기사는 팁으로 20~30% 은연중에 요구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 15%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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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의 은행이 세워진 필라델피아

Lovely Philly 2014. 3. 18. 04:32

필라델피아 Old City의 한쪽 구석에 전혀 고풍스럽지 않은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필라델피아의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이다. 관광객을 위해서 조그마한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출입구 오른쪽에서 간단한 검색을 거치면 무료로 구경할 수 있다. 미국 화폐의 역사와 중앙은행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소중한 장소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은행이 중앙은행으로서 화폐를 발행하고 있는 반면, 연방국가인 미국은 이 연방준비은행이 그 역할을 하고 있고, FED의 홈페이지(http://www.federalreserveeducation.org/about-the-fed/history/)에서 간략하게 미국 중앙은행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 은행의 시작은 당연히 필라델피아이다.

 

 

홈페이지의 내용의 일부를 잠시 인용해 보면,

1775-1791: U.S. Currency

To finance the American Revolution, the Continental Congress printed the new nation's first paper money. Known as "continentals," the fiat money notes were issued in such quantity they led to inflation, which, though mild at first, rapidly accelerated as the war progressed. Eventually, people lost faith in the notes, and the phrase "Not worth a continental" came to mean "utterly worthless."

1775~1791: 미국의 화폐

미국 대륙의회(the Continental Congress)는 미국의 독립혁명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혁명정부 "Continental"이라고 불리는 최초의 종이 화폐을 발행했다. 그러나 정부신용에만 근거한 이 최초의 통화(fiat money)는  과다하게 발행되어 물가가 빠른 속도로 올라갔고, 결국 사람들이 이 통화를 믿지 않게 되었다. "콘티넬탈만큼의 가치도 없다"는 말이 만들어 졌는데 그 뜻은 "정말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의미다.

1791-1811: First Attempt at Central Banking

At the urging of then Treasury Secretary Alexander Hamilton, Congress established the First Bank of the United States, headquartered in Philadelphia, in 1791. It was the largest corporation in the country and was dominated by big banking and money interests. Many agrarian minded Americans uncomfortable with the idea of a large and powerful bank opposed it. When the bank’s 20-year charter expired in 1811 Congress refused to renew it by one vote.

1791~1811: 최초의 중앙은행 설립 시도 
재무부 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의 주도로 의회는 1791년 미합중국 최초 은행(the First Bank of the United States)을 설립하고 본부를 필라델피아 두었다. 이 은행은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회사였으며, 대형 은행자본이 지배했다. 그러나 당시 농업적 기반하에 사고하던 대다수 사람들은 거대한 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을 싫어하고 반대했다. 1811년 의회는 이 은행의 20년 인가기간이 끝나자 한표 차로 인가를 취소했다.

1816-1836: A Second Try Fails

By 1816, the political climate was once again inclined toward the idea of a central bank; by a narrow margin, Congress agreed to charter the Second Bank of the United States. But when Andrew Jackson, a central bank foe, was elected president in 1828, he vowed to kill it. His attack on its banker-controlled power touched a popular nerve with Americans, and when the Second Bank’s charter expired in 1836, it was not renewed. 

1816~1836: 두번째 설립 시도의 실패
1816년 다시 중앙은행(central bank)의 설립하자는 정치적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의회는 근소한 표 차이로 미합중국 제2은행(the Second Bank of the United States)의 인가에 동의했다. 그러나 1828년 중앙은행을 싫어하는 앤드류 잭슨이 제7대 대통령이 되면서 중앙은행을 없애겠다고 약속했다. 그의 은행 지배권력에 대한 공격은 미국의 대다수 대중의 지지를 얻었고, 1836년 제2은행은 인가기간 완료시 갱신되지 못하고 폐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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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를 둘러보고나서 필라델피아 Old City에 들어서면 미국 금융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했는지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중앙은행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연방주의자 해밀턴은 미국 초대 재무장관으로서 이 미국최초의 은행(The First Bank of the United States)을 1791년 필라델피아 Old City(Chestnut과 Walnut 중간의 3번가)에 건설함으로써 미국 금융역사의 한축을 썼다. 이 은행이 통일된 연방 화폐를 발행하여 미국이 독립전쟁 때문에 짊어지게 된 엄청난 부채를 조절한 것이다. (애석하게도 이 건물은 현재 내부가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지 않다) 

 

한편, 현재 초상화 박물관으로 일반이에게 무료 개방되고 있는 미국 제2은행(Second Bank of the United States)은 1816년 420 Chestnut 거리에 설립되었다. 제2은행은 실질적으로 오늘날의 연방준비은행과 유사하게 통화정책과 신용정책을 담당하였다. 특히 이 건물은 1818년 William Strickland가 그리스 부흥양식(Greek Revival Style)으로 건설한 건물로써, 필라델피아의 오랜 전통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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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최상의 상태. 영국 로이즈가 해상보험 취급시 선박상태를 평가할때 처음 표기

보험계리 2014. 3. 17. 12:29

A1 : The best. The term originates in marine insurance, where A1 denotes a vessel that is in perfect conditon, the letter referring to the condition of the hull and number to the condition of the ship's trappings.

 

출처 : Dictionary of International Insurance & Finance Terms, John O E Clark, 5p

영국하면 떠오르는 것은 빅벤, 대영박물관, 마마미야 뮤지컬...

그런데, 보험에 관심있는 사람은 이곳을 가보고 싶어한다. 보험을 이야기하는 교과서의 서론에 등장하는 이곳! 로이즈(Loyd's of London).

 

로이즈의 큰 건물안에 수많은 브로커들이 각자가 하나의 협상테이블을 차려놓고 고객과 요율을 협상한다. 옛날 사람들이 모여서 해상보험의 요율을 논하던 모습을 이렇게 근사하게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파리의 퐁피두센터를 건축했던 리차드 로저스가 지었다는 로이즈 건물과 그안에서 진지하게 토론하고 계산하는 브로커와 고객들의 모습에서 근대보험의 효시였던 로이즈가 여전히 세계시장을 이끌어가고 있음을 확인한다.

흔히 A1하면 제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은 신용평가회사 무디스의 신용등급 체계에서 있는 A1이다. 그러나, A1이라는 등급을 처음 도입한 것은 신용평가사가 아니고 정육점도 아니다.

약 150년전인 1870년대 영국의 로이즈가 선박보험요율을 책정하면서, 선박의 선체 상태를 A, B, C 등으로 평가하고, 탑재능력을 1, 2, 3로 구분함에 따라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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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tality table : 생명표! 눈으로 보면 안다. 단지 table이지만 반복해서 쌓일 때 후손에게 주는 가치를...

보험계리 2014. 3. 17. 12:27

Mortality table : An instrument by which the probabilities of life and probabilities of death can be measured. The basis is the ratio of the number of persons dying at any age to the number of persons alive at the beginning of the year of that age. Mortality and interest rate factors enable actuaries to produce life insurance 'net premium' calculations.

 

출처 : Dictionary of Insurance, second edition, C. Bennett, Prentice Hall, 212p

자녀가 있는 학부모가 주말에 서울에서 편하게 갈 수 있는 곳 중에 하나가 구세군회관 옆에 자리한 서울역사박물관이다. 서울을 축소해 놓은 입체모형도 재미있거니와 듬성듬성 서울의 근현대사를 시각적으로 표현해 놓은 것들이 무척 정감이 있다.

그런데, 보험이나 연금에 관심있는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은 낡은 책이 하나 전시되어 있었는데, 다름 아닌 1955년 "간이총인구조사보고"이다.

 

 

 

 

종신보험이나 연금보험같은 생명보험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이 생존하거나 사망할 확률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 확률을 구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원초적인 방법은 해마다 각 나이별로 몇명이 살고 있고 몇명이 죽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우리나라 생명보험역사의 초창기였던 1950년대에 내무부통계국에서 조사했던 인구표! 연령별로 생존자수를 table로 전개해 놓은 이 무미건조한 표가 우리나라 생명보험역사에 어마어마한 기여를 했으면 좋으련만... 보험상품을 만들때 일반적인 인구통계(국민통계)가 아닌 보험가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험통계(경험생명표)의 사용이 선호되고, 우리나라 근대의 불안정한 이 통계대신에 안정적인 일본의 인구통계를 인용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충분한 통계량,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축적으로 이것 저것 많이 활용하고 있다. 물론 경험통계를 직접 이용하지만 국민통계와의 비교는 필수이다.

아무튼 우리나라는 1982년 처음으로 경험생명표를 만든 이후에 2013년11월 현재 제7회 경험생명표가 사용되고 있다. 후손들은 잊지 않는다. 해마다 한칸 한칸을 채워나갔던 선대의 지루한 노력이 가치가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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